건축이야기

달항아리와 왕의 정원: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건축 철학으로 본 아모레퍼시픽 사옥과 한남더힐의 연결점

hermannhaus 2025. 10. 19. 12:36
Author:kallerna

I. 서론: 도시의 두 상징, 하나의 건축적 질문

서울이라는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의 심장부에서, 두 개의 건축물은 현대 도시 생활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하나는 용산의 번화한 상업 지구 중심에 자리한 단일하고 공공적인 기업의 상징,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이다. 다른 하나는 한남동의 유서 깊은 언덕에 자리 잡은 광활하고 사적인 주거 공동체, 한남더힐이다. 기능과 형태 면에서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이 두 건축물은 언뜻 보기에 공통점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도시 환경 속에서 '안식처'와 '평온'을 창조하려는 현대 건축의 근본적인 도전에 대한 정교한 응답이라는 공통된 맥락을 공유한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이 도시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절제된 평온함을 제공하는 '연결된 안식처(Connected Serenity)'라면, 한남더힐은 외부 세계로부터의 철저한 분리를 통해 고요함을 확보하는 '격리된 안식처(Secluded Serenity)'를 구현한다. 이는 서울의 최상위 계층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의 방식이 단일한 비전이 아니라, 세계와의 통합을 추구하는 동시에 극도로 사적인 휴식을 갈망하는 이중적인 욕망의 스펙트럼을 반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본고는 2023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건축 철학을 렌즈 삼아, 이 두 상이한 안식처 모델이 어떻게 하나의 건축적 대화로 연결될 수 있는지 심도 있게 탐구하고자 한다.

II. 고요한 시인: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모노리식' 건축 철학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건축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노리식(Monolithic)'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거대한 단일 암석'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그의 철학에서 모노리식은 형태, 재료, 구조의 총체적 통합을 통해 강력하고 통일된 존재감을 달성하는 건축적 접근법을 의미한다. 이는 요란하고 스펙터클한 건축을 지양하고 '차분한 품격'을 선호하는 그의 태도와 직결된다.   

치퍼필드는 건축이 단순히 독립적인 예술 작품이 아니라 도시의 일부로서, 그 건물을 매일 오가는 시민들에게까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건물이 주변 환경과의 조화 속에서 의미를 찾으며, 도시의 역사와 장소성 같은 무형적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맥락주의적 관점은 그의 모든 작업에 깊이 뿌리내려 있으며, 지역의 문화적 특성에 대한 깊은 고찰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   

그의 '모노리식' 개념은 여러 프로젝트에서 구체화된다. 스위스 취리히의 한 개인 주택에서는 밝은 색상의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벽을 사용하여 건물 외관에 모노리식 특성을 부여했다. 베를린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는 단열 콘크리트 벽이 구조를 지지하고, 단열하며, 내외부 공간을 규정하는 모든 건축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게 함으로써 재료와 형태의 완벽한 통합을 보여주었다. 일본 효고현의 이나가와 묘지 예배당에서는 대지와 유사한 붉은색 콘크리트를 바닥, 벽, 지붕에 모두 사용하여 풍경 속에 하나의 거석처럼 보이는 모노리식 외관을 창조했다. 이처럼 치퍼필드에게 모노리식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의 본질적 요소를 순수하게 통합하여 강력한 존재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접근은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을 풍미했던, 이미지 중심의 파편화된 '스타키텍처(Starchitecture)'에 대한 근본적인 반작용으로 읽을 수 있다. 건축적 과시가 만연한 시대에 그의 철학은 미학을 넘어 윤리적인 차원으로 확장된다. 좋은 건물은 요란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대신, 조용히 도시의 구조 속에 스며들어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신념의 물리적 발현인 것이다.   

III. 도심 속 현대적 달항아리: 아모레퍼시픽 사옥의 건축 서사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모노리식 철학이 가장 극적으로 구현된 사례가 바로 아모레퍼시픽 서울 본사 사옥이다. 이 거대한 입방체는 그의 건축적 이상이 한국의 전통 미학과 만나 탄생한 기념비적인 결과물이다.

모노리스, 달항아리를 품다

치퍼필드는 복잡한 도시 풍경 속에서 단순함과 고요함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그 영감을 조선백자 '달항아리'에서 찾았다. 달항아리는 화려한 기교 없이도 단아하고 풍부한 아름다움을 지닌 한국 미의 정수다. 치퍼필드는 달항아리의 형태적 유사성을 넘어, 그 본질에 주목했다.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은 완벽한 구형이 아닌 미묘한 비대칭과 질감,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비어 있음'에서 나온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바로 이 '비어 있음의 힘'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현대적 달항아리다.   

비어 있기에 강력한 공간: 아트리움과 중정

건물의 모노리식 형태를 관통하는 것은 거대한 세 개의 '보이드(Void)', 즉 비어 있는 공간이다.

첫째는 건물 중앙 1층부터 3층까지를 아우르는 거대한 아트리움이다. 높은 층고와 노출 콘크리트 기둥으로 마감된 이 공간은 단순하고 고전적인 건축미를 통해 마치 신전과 같은 숭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방으로 열린 출입구를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이 아트리움은 기업의 사옥을 넘어 도시의 공공 광장 역할을 수행하며, 기업과 지역사회를 잇는 소통의 장이 된다.   

둘째는 건물 5층, 11층, 17층에 각각 조성된 '루프 가든'이다. 이들은 단순히 옥상에 만들어진 정원이 아니라, 건물의 거대한 매스 자체를 과감하게 도려내어 만든 공중 정원이다. 치퍼필드는 한옥의 개방적이면서도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중정(中庭) 구조에 매료되었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건물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 공중 정원들은 직원들에게 자연과 호흡하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도시를 향해 열린 거대한 창(窓) 역할을 한다. 정원 너머로 보이는 용산공원과 남산, 도심의 풍경은 한옥의 대청마루에 앉아 바깥 경치를 안으로 끌어들여 감상하는 '차경(借景)'의 미학을 구현한다.   

빛을 머금는 피부: 알루미늄 루버 파사드

건물의 거대한 규모가 주는 위압감을 완화하고 섬세한 표정을 만드는 것은 외벽을 감싸고 있는 2만 1,500여 개의 수직 알루미늄 핀(루버)이다. 나무 발에서 영감을 얻은 이 루버들은 직사광선을 차단하고 자연 채광을 실내로 부드럽게 확산시키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한다. 동시에, 날씨와 시간에 따라 빛을 반사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백자의 표면처럼 건물의 인상을 계속해서 바꾼다. 이 정교한 외피는 거대한 모노리스에 깊이감과 역동성을 부여하며, 마치 건물이 숨을 쉬는 듯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결론적으로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다공성 모노리스(Porous Monolith)'라는 새로운 건축 유형을 제시한다. 이는 강력하고 단일한 기업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모노리스 형태와, 도시를 향한 개방성 및 공공성에 대한 헌신이라는 상충될 수 있는 두 가치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다. 치퍼필드는 '비움'을 통해 모노리스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존재에 목적과 생명력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그는 21세기 도시에서 기업 사옥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 즉 사적 공간을 넘어 공공 인프라로서 기능하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IV. 담장 안의 요새 정원: 한남더힐의 탄생과 공간 언어

시선을 한남동으로 옮기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안식처와 마주하게 된다. 한남더힐은 유서 깊은 단국대학교 부지에 한스자람(주)이 시행하고 대우건설과 금호건설이 시공하여 탄생한 최고급 주거 단지다. 이곳의 건축 언어는 아모레퍼시픽의 수직적이고 도시적인 개방성과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시작된다.   

왕의 정원, 그 개념의 시작

한남더힐의 핵심 정체성은 세계적인 조경설계가 사사키 요지(Sasaki Yoji)가 설계한 '왕의 정원(王의 庭園)'이라는 콘셉트에서 비롯된다. 이는 단지 전체를 하나의 거대하고 완결된 정원으로 조성하여, 입주민들에게 마치 왕이 된 듯한 지극히 사적이고 평온한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야심 찬 비전이다.   

중정·차음·정원벽: 공간 언어의 해부

한남더힐의 공간 철학은 '중정', '차음', '정원벽'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압축될 수 있다.

중정(Courtyard): 아모레퍼시픽의 중정이 수직적으로 파고든 공중 정원이라면, 한남더힐의 중정은 단지 전체를 아우르는 광활한 수평적 대지 그 자체다. 용적률 120%대의 저밀도 설계 덕분에 32개의 저층 건물들은 넓은 동간 거리를 확보하고 있으며, 단지 내 녹지 비율은 극도로 높다. 600세대의 입주민들은 개별 건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공원과도 같은 연속적인 외부 공간, 즉 하나의 거대한 공동의 중정을 공유하는 셈이다. 이는 빽빽한 서울 도심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공간적 사치를 제공한다.   

차음(Soundproofing): 한남더힐의 고요함은 단순히 두꺼운 벽이나 첨단 창호 기술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건축과 조경 전략 자체가 거대한 소음 차단 장치로 기능한다. 12층 이하의 저층으로 설계된 건물들, 넓은 동간 거리, 그리고 풍부한 수목과 잔디밭은 도시의 소음을 흡수하고 분산시키는 자연적인 방음벽 역할을 한다. 이는 물리적인 소음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소음까지 차단하여 완벽한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정원벽(Garden Wall): 이 개념은 단지가 외부와 분리된, 자족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한남더힐의 '벽'은 위압적인 콘크리트 담장이 아니라, 정교하게 계획된 조경과 지형의 단차, 그리고 건물의 배치를 통해 형성된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경계다. 이 보이지 않는 '정원벽'은 외부의 시선과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하며, 입주민들에게 절대적인 프라이버시와 외부 세계와는 다른 고유한 장소성을 보장한다.   

결국 한남더힐이 제공하는 최고의 가치는 화려한 마감재나 첨단 시설이 아닌, '공간'과 '분리' 그 자체다. 초고밀도 도시 서울의 심장부에서 의도적으로 저밀도 개발을 선택함으로써, 도시의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도시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난 듯한 전원적인 삶의 이상을 재현한다. 이는 서울의 전통적인 고급 주거 개념을 재정의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도시 럭셔리다.

V.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 모노리스가 정원을 만날 때

아모레퍼시픽 사옥과 한남더힐은 표면적으로는 정반대의 건축물처럼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도시 속 안식처'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한 건축적 사유가 흐르고 있다. 두 건축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현대 도시인이 갈망하는 평온을 창조하며,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연결고리를 드러낸다.

'모노리식 안식처'인 아모레퍼시픽은 건축 형태의 순수성과 질서를 통해 평온을 구현한다. 거대한 모노리스의 절제된 형태와 그 안에 정교하게 계획된 '보이드(void)'는 도시의 혼돈을 질서 있게 프레이밍하고, 통제된 방식으로 자연과 도시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인다. 반면 '비지(Enclave) 안식처'인 한남더힐은 물리적 분리를 통해 평온을 확보한다. 도시 풍경을 차단하고 그 자리를 완벽하게 조성된 자연 환경으로 대체함으로써,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 몰입형 안식처를 만들어낸다.

주목할 점은 두 프로젝트 모두 '보이드', 즉 비어 있는 공간의 건축적 힘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의 보이드는 아트리움과 공중 정원이라는 수직적이고 도시적인 형태로 나타나며, 도시와의 '연결'을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아트리움은 공공 광장으로, 공중 정원은 도시를 향한 창으로 기능한다. 반대로 한남더힐의 보이드는 단지 전체에 펼쳐진 광활한 녹지라는 수평적이고 자연적인 형태로 나타나며, 도시와의 '분리'를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이 넓은 녹지 공간은 외부 세계로부터의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이러한 건축 전략의 차이는 현대 한국 사회의 권력과 영향력이 작동하는 두 가지 다른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모레퍼시픽의 '다공성 모노리스'는 개방적이고, 문화적으로 소통하며, 대중을 향한 자신감 있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소프트 파워'를 건축적으로 구현한다. 아름다움과 문화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의 철학이 건물에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반면, 한남더힐의 '요새화된 정원'은 사적이고, 배타적이며, 철저히 보호된 공간 속에서 영향력이 작동하는 '하드 파워'를 상징한다. 이곳에서는 국가의 경제, 정치, 문화를 움직이는 엘리트들이 외부의 시선이 닿지 않는 절대적인 프라이버시 속에서 교류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따라서 두 건축물은 단순히 아름다운 건물을 넘어, 한국 사회 최상층이 존재하고 작동하는 서로 다른 방식에 대한 건축적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다.

VI. 유산의 가치: 숫자로 본 한남더힐의 현재

한남더힐의 건축적, 사회적 가치는 부동산 시장에서 매겨지는 가격으로 명확하게 증명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단지라는 타이틀을 수년간 유지하며,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독보적인 자산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초기 분양 방식은 고가의 임대 후 분양 전환 모델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시행사와 입주민 간 분양 전환 가격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남더힐의 가치는 꾸준히 상승했다. 분양 전환 초기에도 전용면적 244㎡의 3.3㎡당 가격이 8,150만 원에 달했으며, 이후 10대 그룹 총수 일가를 비롯한 최상류층의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최근 거래 내역은 이러한 위상을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2024년에는 100억 원에서 110억 원을 넘나드는 거래가 다수 성사되었으며, 이는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최고급 대형 아파트의 가치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부동산 가치 예측 플랫폼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10월, 74평형(전용 244.78㎡)의 시세는 156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등, 앞으로도 그 가치는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 표는 한남더힐의 대표적인 실거래가 및 시세 정보를 정리한 것이다.

평형 (전용면적 ㎡) 거래일/시점 실거래가 / 시세 (억 원) 3.3㎡당 가격 (억 원) 비고
74평 (244.78㎡) N/A 2025년 10월 (예측) 156.3 2.11 밸류쇼핑 시가 예측 
85평 (235.31㎡) 1층 2024년 10월 100.0 1.17 쇼호스트 동지현 매입 
70평 (244.75㎡) N/A 2025년 (공시) 118.6 1.60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 4위 
85평 (284.21㎡) N/A 2024년 3월 109.0 1.27 잡코리아 대표 윤현준 매입 
18평 (59.68㎡) N/A 2025년 1월 31.7 1.75 김은숙 작가 매도 
  

VII. 별들의 클러스터: 한남더힐에 사는 사람들

한남더힐의 가치는 단순히 숫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면면은 이곳이 단순한 고급 아파트를 넘어 현대 한국 사회의 권력과 부, 그리고 문화적 영향력이 응축된 특별한 공간임을 보여준다.

재계에서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을 비롯한 현대가,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 대한민국 경제를 이끄는 거물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의 전·현직 고위 임원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어, 한남더힐은 현대판 '재벌 타운'의 면모를 보인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같은 인물들은 여러 채를 소유하며 손님용 숙소나 오피스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이곳이 단순 주거지를 넘어 비즈니스와 사교의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문화 예술계에서도 한남더힐은 선망의 대상이다.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숙소로 사용했으며, 멤버 진은 단독 명의로 2채를 보유하고 있다. 배우 안성기, 한효주, 가수 이승철 등 오랜 기간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스타들도 이곳의 주민이다. 최근에는 '더글로리'의 김은숙 작가, 스타 쇼호스트 동지현 등 새로운 분야의 아이콘들까지 합류하며 거주자들의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최고 엘리트들이 한 공간에 모여 사는 현상은 한남더힐을 '현대판 궁정(Gated Court)'으로 만든다. 전통적인 재벌 가문으로 대표되는 '올드 머니(Old Money)'와, IT, 엔터테인먼트 등 신흥 분야에서 부와 명성을 쌓은 '뉴 파워(New Power)'가 물리적으로 공존하며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융합이 일어나는 장이 되는 것이다. 입주자의 초대가 있어도 방문이 제한될 만큼 철저한 보안과 프라이버시 보장은 이러한 최고위층의 필요에 부응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결국 한남더힐은 대한민국 최상위 네트워크의 핵심 노드로서, 절대적인 재력과 사회적 자본이 교류하는 보이지 않는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VIII. 결론: 서울의 두 가지 현대적 안식처에 대한 고찰

아모레퍼시픽 사옥과 한남더힐은 시각적으로나 기능적으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지만, '안식처 건축'이라는 거대한 주제 아래에서 서로를 비추는 쌍둥이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두 건축물은 현대 도시의 압박 속에서 어떻게 평온을 찾을 것인가에 대한 두 가지의 서로 다르지만 똑같이 심오하고 아름다운 해답을 제시한다.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절제되고 다공성인 모노리스를 통해 도시와의 사려 깊은 '연결'을 찬미한다. 건축은 도시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시의 한복판에서 질서와 아름다움을 통해 고요함을 창조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반면, 한남더힐은 정교하게 조성된 목가적인 비지를 통해 도시로부터의 의도적인 '분리'와 '휴식'을 제공한다. 건축은 때로 외부 세계를 차단하고 완벽하게 통제된 내부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가장 완벽한 안식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 두 건축물의 공존과 성공은 현대 도시에서 잘 사는 방법에 대한 정답은 하나가 아님을 시사한다. 어떤 이는 도시와의 교감 속에서, 또 다른 이는 도시로부터의 거리감 속에서 안식을 찾는다. 중요한 것은 위대한 건축이 우리에게 그 선택의 가능성을 심오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이라는 역동적인 캔버스 위에 그려진 이 두 개의 다른 풍경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가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영감 어린 질문을 던져줄 것이다.